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알고싶지 않아할 진실을 이 책은 참 덤덤히도 파헤쳐 내고 만다.
그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씨의 소설들은 다 비슷한 결을 지닌다.
주옥같이 공감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절들이 많아, 심지어 필사하다가 중도에 펜을 놓아버리게 한 책
첫째, 사랑이 뭔가요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p.27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로맨스는 빗 속에서 사랑을 외치는 건 줄 알죠.
영화에서처럼요.
하지만 훨씬 엉망이거든요."
이 책에서도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나온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모습과, 사랑이 진행될 때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한다. 그의 사랑은 불완전하다는 느낌에서, 완전해지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다.
p.30
상대방이 나를 완성시킬 것만 같은 느낌,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방이 어루만져주고 충족시켜줄 것 같은 느낌.
우리의 나약한 부분에서 시작된 타인에 대한 선망이 사랑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성인이 된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닌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 거부하게 되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p.63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닌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 어떤 후보군들을 거부한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연애로부터 어떠한 자극을 찾게 되는 것이다
둘째, 관계를 맺어나가며
의사전달을 잘하는 기본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는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
그들이 명료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대체로 원만한 사람이라는 대단히 가치 있는 인식을 길러낸 덕분이다.
p.100
서로 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있어서 생기는 불안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일거다.
"자신이 대체로 원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자신감이 나오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니깐 연애도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결론을 조심스레 도출해본다.
이런 미심쩍음은 욕망에 불을 붙일 뿐이다. 라비 자신도 알고 있듯이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그를 즉시 받아주는 사람이나 아예 틈을 안 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짐작할 수 없는 이유로 그를 잠시동안 애 태우는 사람이다.
p.25
수많은 사례가 쏟아져나오는 밀당의 기술을 알랭 드 보통씨가 설명하고 있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력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토라짐은 사랑의 기묘한 선물 중 하나다.
p.86
이 문장은 제일 공감되는 문장이자, 이 책에서 내가 꼽은 최고의 문장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심지어 삐지는 행위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삐졌다고 나를 버리고 갈 사람이라면 애초에 상대방에게 삐지는 것과 같은 유치한 행위를 하지 않을테고,
그만큼 상대방을 신뢰하기 때문에 유치한 모습도 보여준다는표현이다.
이건 삐지는 사람보단 삐짐 당하는 상대방이 읽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다. (ㅎㅎ)
(연인에게 삐졌을 때마다 이 문장을 슬쩍 들이밀면 화해를 하게 될까 더 크게 싸우게 될까?)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p.35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이 온갖 불안과 외로움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큰 사랑과 친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거다.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 커플이 훨씬 나쁜 일들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p.81
오 다들 그랬구만!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p.33
그래서 사람이 완벽해보이면 오히려 정감이 안 간다.
나 없이도 잘 살 것 같은 사람 곁에는 왠지 머물고 싶지 않는 느낌이랄까.
서로의 결점과 약점을 허물없이 드러낼 수 있고,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
셋째, 그리고 결혼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p.58
미혼싱글의 입장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종종 따분해 보이기도 한다.
드넓은 가능성의 우주에서 한 개의 별을 콕 집어, 이것만 평생 바라보겠다고 서약한거니까.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초반부에
어릴 적 여주인공의 바람난 아버지가 딸들을 앉혀놓고서는,
'결혼이란 평생 한 개의 토끼인형이랑만 놀 수 밖에 없다는 규칙이나 다름없다'는 설교를 한다.
'결혼은 따분한 것'이라는 수많은 비유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상태와 결혼을 결심하는 행위는 너무도 다른 시선을 받게 된다. (겨울왕국 1편만 봐도, 안나의 약혼은 아주 센세이셔널한 결정이었으니까 말이다.)
다소 부끄럽지만 결혼의 매력은 혼자 산다는 게 얼마나 불쾌한지로 귀결된다. 사회 전체가 독신 생활을 최대한 성가시고 우울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 하다. 어떤 관계든 그 성공은 연인과 함께할 때 얼마나 행복한가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혼자인 것을 각자가 얼마나 걱정하는가에 따라서도 결정한다.
p.60
요즘 TV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기혼족과 미혼족의 대결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내 눈에는 '결혼 안 해도 잘 살 수 있어'가 더 대세인 듯.
일례로 <나 혼자 산다>는 싱글족들의 증가로 인해 그들을 좀 공략해보겠다는, 싱글들의 즐거운 라이프를 조명한 프로그램이다만, 그들도 혼자 있지는 않잖나. 친구랑 있든 가족이랑 있든 반려동물이랑 있든, 그러지 않던가.
어찌됐든 문득문득 외로운 순간은 찾아온다.
'함께라면 더 행복할거야'라는 기대로 결혼을 선택한다지만, 그 이면에는 '혼자서 외롭게 살다가 쓸쓸히 고독사하고 싶지 않아'라는 두려움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
간간히 듣고 있는 팟캐스트 <듣똑라 : 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 에서 비혼여성 공동체 대표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그들은 말한다.
"비혼을 결심하고서도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여러 분야의 비혼 여성들이 다같이 모여, 프로젝트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며 함께 살아 나간다"고 한다. 참 긍정적인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든 아니든, 인생을 함께 헤쳐나갈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뚜렷한 파국이나 큰 행복 없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관계가 사랑의 진척에 관한 이야기로서 마땅히 대접받지 못하고 여전히 러브스토리 밖에 머무는 것은 흥미롭고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p.18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는 요즘이지만, 오랜 시간 한 관계에 공 들이는 것의 가치를 잊고 싶지 않다. 그것이 권태감을 줄지라도.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는 정확히 이 문제를 짚고 있다.
잠깐 줄거리를 말하자면 -
결혼한 지 5년 된 부부가 등장하고, 행복하고 평온한 나날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여자는 새로 이사온 이웃 남자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이제 오래 사귄 편안함과 새로 만난 자극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명대사 한 줄_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남편의 여동생이 그녀에게 말한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생각할 거리를 정말 많이 던져주는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의 서재의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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