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미안하지만 우선 그렇게 읽기 깔끔한 책은 아니었다.
책 소개글을 보면 저자가 면역학이라는 난해한 과학을 시적 은유를 동원해 아름답게 서술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비문학 글에서 그런 시적 은유를 바라는 것은 아닌데 말이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읽었던 랩걸(Lab girl)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딱 그 정도의 서술 수준이면 너무 좋을텐데)
예컨데 뜬금없이 뱀파이어 얘기를 꺼내고, 갑자기 자본주의와 면역, 가부장주의와 면역을 끼워맞춰 연결시키는 식이다. "응?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엄마의 입장에서 면역을 바라보다 보니, 자녀 양육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매우 여러 차례 꺼내어 이야기한다. 저자가 면역에 큰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쓰게 된 것 자체가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부터 기인하지만, 그래도 너무 쓸모없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추천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면역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과연 나 하나만 건강하면 되는 것일까,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완전 남의 이야기인 것일까. 책을 읽고나면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으로부터 201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매우 유명한 책이다. 유명한 책은 일단 믿고 읽어본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제 1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심지어 이 독감은 특히나 면역계가 강한 청년층에게 더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최근 젊은 사람들이 클럽에 돌아다니면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라는 기사가 뜬 후, 어떤 한 사람이 쓴 댓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 병이 노년층이나 면역이 취약한 사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치명적인 병이었다면, 노년층과 장년층들은 절대로 그렇게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밖에 나가보면 거의 코로나가 끝나있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인상깊은 문장들
백신 접종은 대개의 경우 면역계가 손상된 사람들에게 제일 위험하다는 문제가 남는다. 면역 기능이 약화된 사람은 잘 기능하는 면역계를 가진 사람들이 면역을 지녀서 자신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특히 다른 사람들과 다 이어져있다. 우리의 면역체계, 병균, 미생물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백신을 맞는 것은 나뿐만 아닌 타인을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거대한 면역망을 형성하여,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호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부터 우리는 그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 대륙과 바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도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의학의 맥락에서 순수함, 안전함, 무해함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좋음의 동의어로 쓰는 태도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심하게 괴리된 결과인 게 거의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상품을 선호한다. 더 건강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정작 인공적인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이한 사고방식에 빠져있다.
모종의 상상된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동안 인류의 유대는 적잖이 희생되어 왔다.
같은 맥락에서 인류는 오랜 시간동안 '순수한', '순혈'이라는 개념을 추구해왔고, 이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다양성이야말로 모든 생태계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이다. 주변의 예시로는 강아지를 들 수 있다. 사실 강아지도 잡종이 제일 건강하다. 순혈이라는 건 다르게 말해 근친교배를 시킨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관절염 등의 유전병에 항시 노출되어 버린다. 그 모든 것 또한 욕심을 채워주기 위한 '상상된 순수성'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늘 질병에 걸려 있겠지만 아픈 경우는 거의 없다.
최소한 우리는 우리가 출생 시점부터도 전반적인 주변 환경보다 더 깨끗한 존재는 못 된다는 걸 안다. 우리는 모두 오염된 존재이다.
나는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일을 한다. 처음 일하기 시작한지 몇 달은 내가 방어할 틈도 없이 온갖 세균이 내 몸으로 침투하는 기분이었다. 손은 두말할 것 없이 피로했고, 목은 자주 부었으며, 눈은 매우 건조해져서 겨울에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심지어 매우 튼튼하다고 자부했던 허리에도 자주 부담이 왔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세균덩어리로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나는 무적이 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에 노출된 결과로 내 몸이 면역체계를 형성해낸 것 같았다. 동일한 환경임에도 나는 더 건강한 기분이 들었고, 더 이상 과거에 반복되던 질병들이 발현되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외계인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인간이란 미생물의 운송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맞다.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재조정되는 것을 일하면서 뼈져리게 느꼈다. 나는 건강 염려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은근히 신경쓰인다. 평소와 다른 불편함이 느껴지면 괜히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된다. 하지만 과잉 진료가 우려되어 병원으로도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 몸에 100% 완벽히 건강한 상태는 없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하듯이 우리는 항상 어떠한 질병을 안고 있지만, 그것이 발현되지 않는 것뿐이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완벽히 면역이 된 상태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뜬구름잡는 소리일 수 있다.
에이즈 교육은 우리에게 제 몸을 다른 몸들과의 접촉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 가르침은 그와는 또 다른 종류의 고립, 즉 완전무결한 개인 면역계에 대한 집착을 낳은 듯하다.
...
스스로 면역계를 형성하고, 증강하고, 보충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문화적 강박이 되었다.
나 또한 이 '집착'에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놀이터에서 놀다 왔으면 손부터 씻으라는 엄마의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 스스로가 나서서 가장 먼저 바깥의 먼지를 온 몸에서 닦아내고, 아주 깨끗하고 편안한 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알콜솜으로 핸드폰을 슥슥 닦아낸다. 생전 챙겨먹지도 않던 비타민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는 간호사인 언니의 영향도 있을게다. 언니야말로 처음에는 왜 이렇게 유난을 떨지 싶을 정도로 청결에 집착했다. (내가 언니 침대에 발을 올리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다. 나 스스로 완전무결한 면역계를 구축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싶다. 우리가 깨끗하고 청결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온갖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다. 우리 몸 자체가 바이러스로 뒤덮혀 있으며, 다른 사람의 피와 살, 세포로 가득 차 있다. 질병과 바이러스를 우리로부터 쫓아낼 수는 없다. 다만, 함께 노력하여 이 거대한 면역망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몸을 잘 챙기는 것은 본인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 위한 더 큰 행위이다.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면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나는 과연 면역에 너무 과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순수함'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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