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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함께 독서해요)

[인문책추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_능력주의의 부작용과 해결책에 대하여

by 파랑코끼리 202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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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돌아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이미 팽배해있는 '능력주의'에 대해 깊은 고찰을 시도한다. 능력주의는 과연 우리 사회에 이로운 이념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그에 대한 해결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하나씩 되짚어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들이 참고용으로 제시되는데, 특히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연설에서 은연중에 사용했던 단어들에 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사실과 더 이상 맞지 않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상류층에 올라간 사람들은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올라간 것이 아님을 잊고 오만하게 굴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각을 보낸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p.53

 

사회적 상승을 허용하는 사회, 하물며 그런 상승을 찬양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혹독한 판결을 내리기 마련이다. P.190

 

 

 

능력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첫째, 효율성과 공정성을 원칙화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개개인의 야망을 키워준다.

운명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주고, 삶을 살아갈 원동력같은 것을 제시해준다.

 

 

 

 

능력주의가 폭압적인 이유


하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왜 폭압적인지에 더 집중한다.

첫째,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곧, 이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사다리 위로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야망이 부족했다며 자책하고 비하받아 마땅하다는 태도를 갖게 된다.

둘째, 불운을 겪는 사람에게 냉혹한 태도를 부추긴다. 외부적 요인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노력이 부족해서 못 빠져나온거야. 노력만 하면 올라올 수 있어' 라는 식으로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이 아닌 냉소와 무시의 태도를 갖게 한다. 

 

 

 

'넌 노력을 안해서 그렇게 된거야'라는 식이다.

 

 

인과응보적 사고론이라고도 하지.


능력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는 '불안하면서도 치열하나 경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런 식의 인과응보적 사고는 먼 옛날부터 시작된다. 칼뱅주의의 섭리론*과 원죄론*에서 시작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 섭리적 징벌론으로 발전하고야 만다. 예를 들자면, 자연재해로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이건 죄에 대한 신의 응보야'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청교도는 성공을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본다. P.105

 

 

 

 

 

이러한 교리는 내가 나의 운명의 책임자라는 힘을 내게 해주지만, 우리의 운명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어진다는 부작용을 만든다. 배려 부족이다.

 

 

복지국가는 이제 책임을 면해줄 방파제로서 충분하지 않으며, 전보다 더욱 개인에게 책임을 물리고 있다. P.116

 

 

*섭리론 : 성공한 사람은 그럴만해서 성공했다.
*원죄론 : 칼뱅과 청교도에게 모든 사람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 그 누구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고, 구원은 오로지 신의 은총에 따른 것이다.

 

 

현대 미국에서의 능력주의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현대 미국에서 능력주의가 옹호되기 시작된 것은 레이건 대통령때부터였다. '땀 흘려 일한 이상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능력주의를 옹호하였고, 그 이후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러한 능력주의를 신봉해왔다. 그와 반대되는 태도를 처음으로 취한 것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 국민 주권 원칙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현재 미국인의 77%는 인간의 자수성가 능력 즉,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등지 타 국가는 자신의 통제범위 밖의 변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믿음이 더 강하다. 참으로 유의미한 통계다. 나도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까운 입장이다.

 

 

 

플라톤

 

더불어, 나는 이 능력주의를 플라톤의 '고귀한 거짓말(The Noble Lie)'의 측면에서 바라본 시각이 제일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고귀한 거짓말'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린이들이 신이 간통·실수한 내용을 학습하면 신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질 것이므로, 그런 내용을 교육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로 바꿔말하자면, 능력과 재능과 노력만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없지만, 국민이 그 사실을 학습하면 사회 발전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것. 노력만으로 모든 게 결정나지 않음에도, 노력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사회적 메세지는 바로 국민들을 향한 '고귀한 거짓말'이다.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 P.207_오스트리아 경제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한때 기회의 문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대학 학위는 이제 학력주의자의 특권과 능력주의의 오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P.171

 

 

 

 

뜬금없지만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이 드라마는 어릴 적 재벌 2세의 뺑소니로 아버지를 잃고 억울하게 감옥까지 다녀와 중학교만 졸업한 주인공 '박새로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그 재벌의 회사를 흡수하여 진정한 자본주의적 복수를 이룩해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헥헥)

 

드라마의 메세지부터 '시작'이라는 OST의 가사 하나하나까지 모두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아주 희망찬 메세지를 담고 있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보이더라.

 

재밌자고 만든 드라마지만 하나하나 짚어보고 싶다. 일단, '박새로이'가 19살짜리 매우 능력있고 실패없는 고졸 인스타 인플루언서 '조이서' 를 가게 매니저로 채용하게 되는 것. 우연이고 행운이다. 그리고 조이서의 단짝친구 '장근수'가 알고보니 재벌 집안의 서자라는 것. 우연이다. 그냥 뽑은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 알고보니 부동산 재벌 할머니의 숨겨진 손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 재벌 할머니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을 계기로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는 것. 매우 우연이고 매우 행운이다. 이 모든 일련의 설정들이 시청자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상반된다. 박새로이의 노오오오력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났지만, 주변에 행운도 기가 막히게 엄청난 규모로 작용했다는 것. 박새로이가 소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결국 외부적 요인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뭐,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드라마도 능력주의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이어서 가보자면,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며 뭐든 우리가 얻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의 라이벌은 '우리 운명은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 없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게, 가령 신이거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순간의 선택에 따른 예상 밖의 결과 등에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P.300

 

 

이 문장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책, <리빙 더 월드>

 

 

[소설책추천] <리빙 더 월드, Leaving the World>, 더글라스 케네디 _비극을 딛고 다시 살아갈 용기

 더글라스 케네디 더글라스 케네디 ! 매우 유명한 작가이자 매우 정감이 가는 작가다 남성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여성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지, 여성을 주인공으로 두고서도 어떻게 그렇게 치밀

elephantblu.tistory.com

 

예전에 읽고 나서 리뷰했던 책이다.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자신의 노력을 넘어선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한 여성의 삶이 파괴 직전까지 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살아나가는 이야기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런 외부 요인의 불가항력을 매 소설마다 다루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 그리고 더글라스 케네디의 말마따나 모든 걸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냈다는 오만은 능력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작용이다. 더군다나 능력주의는 노동자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힐빌리와 같이 백인 노동계급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해결방법은 '겸손'

 

 

해결방법이 너무 시시하고 구체적이지 않아서 조금 실망스럽긴 하다만, 400쪽 가까이 달하는 내용 속에서 능력주의가 이 사회에 어떻게 독이 되고 있는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논의를 불어일으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가령, 우리가 성공과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승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따위의 문제들이다. 고민해볼만한 좋은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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