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캐럴라인 냅은 1959년생으로, <명랑한 은둔자>라는 유명한 책을 집필한 저자이다. 이 책 <욕구들>은 2003년 출간된 책 책으로 그녀가 살아생전 집필한 마지막 에세이이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모두 느끼고 공감하는 욕구들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에 대해 세세하고도 적나라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
<욕구들>에는 특히 그녀가 거식증을 앓았던 시절이 많이 등장하는데, 거식증 부분은 공감하기가 힘들었지만 그 외의 전반적인 부분들은 여성으로서 참 공감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구들이 많았다. 책을 통해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으면서도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욕구들, 혹은 당당히 털어놓기 수치스러워 했던 욕구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마음 한 켠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욕구.
자신의 욕망과 추구는 남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로 승화시키도록, 자신의 실망은 삼켜 삭이도록 교육받고 자란 여자는 자신에게 없는 그 권위와 권한의 감각을 딸에게 어떻게 전해줄까? 아마도 여자는 딸에게 그런 감각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P.130
“남자들의 필요는 언제나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고 분명하게 울렸어요. 아버지는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해야 했고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했죠. 하지만 어머니와 이모와 고모들에게는 자신의 필요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가리게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인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고, 그러니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P.132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걱정하는 만성적인 압박감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힘들어하는 모습, 혹은 남자들은 사과할 일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일들에 대해 자동적으로 사과하려는 충동을 억누르려 애쓰는 모습. 이는 모두 학습된 행동이다. P.133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미안해하는 것, 친절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조차 친절하려고 애쓰는 것. 남자에게는 '억세다', '기가 드세다'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수식어가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 말은 반대로,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순종적이며, 착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자라는 동안 나는 어머니가 저녁상 차리기를 거부하거나, 빨래를 해놓지 않거나, 귀찮다고 장을 봐오지 않거나, 자신이 그러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모든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먹이는 것만큼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한결같이 먹이는 여자는 거기 없다. P.136
어머니의 가정에 대한 헌신은 디폴트 값으로 여겨졌다. '엄마라면 당연히' 라는 식의 프레임. 똑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정에 대한 헌신과 육아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현실을 드라마 <며느라기>는 아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주부 사이에도, 전업주부들이 워킹맘을 질투하고 흉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직 주부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외모로 평가당할 때 혹은 남자가 생각해주는 척하며 얕잡아볼 때, 똑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보수를 받을 때, 감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성질 나쁜 여자’ 취급을 받을 때 여자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꼈고, 자신의 역량과 지적인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유별나게 열심히 일했고, 덜 수용적이고 덜 보살피는 사람이 되며, 자신의 마음과 갈망에 더 깊이 헌신할 줄 알게 되었다. P.141
자신에게는 욕망의 대상이 될 권리뿐 아니라 욕망할 권리도 있다고. P.141
내가 좋아하는 유투버가 있다. 여자고, 사회 이슈에 대해 아주 똑똑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유투버다. 머리는 똑똑하지만 엘리트주의와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남자를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하도 똑똑해서 대화가 재밌었는데, 내가 이 유투버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마자 그가 하는 말. "걔 페미니스트 아니야?" 그러면서 시작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장 연설. 연설의 주제는 '너가 왜 그 유투버를 보면 안되는지'에 관해서였다. 오만한 남자들은 가끔, 상대 여성의 취향을 까내리고,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재수없는 태도를 장착하고는 자신이 '무지한 너에게 올바른 취향'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 때가 있다. 덕분에 사람을 볼 때 정말 중요한 기준을 새삼 체득하게 되었다. 상대의 취향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단 거르는 것으로.
딸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내릴 선택들을 고려할 때 견딜 수 없는 갈등에 직면한다.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새로운 여성 존재’가 되고자 하는 전념의 양극단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P.151
성년이 되고 세상을 들어서면서 갑자기 딸은 어머니의 부러움과 질시를 불러일으킬 위험에 처하는데, 그보다 더 나쁘고 더 고통스럽고 생각하기도 심란한 점은 이제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어머니 자신의 실패와 결핍을 상기시키는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킴 처닌, <허기진 자아>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참으로 가까우면서오 오묘하다. 사피엔스 스튜디오 김지윤 소장이 찍은 강연 중에 '엄마가 딸에게 더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영상이 있는데 재밌다. 어머니는 종종 딸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어머니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참 다양한 감정이 들테다. 인스타나 유투브에는 종종, '딸과 자매처럼 보이는 엄마'들에 대한 영상이 올라오고는 한다. 딸과 언니 동생 사이로 보일 정도로 젊은 외모를 잘 유지했다는 것이 포커스일텐데. '아들과 형제처럼 보이는 아빠'에 대한 영상은 본 적이 없다. (딱히 뜨지를 않아서 그런가) 많은 걸 생각해보게 한다.
당신이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 굶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P.163
여성의 외모에 대하여
끊임없이 모욕의 따귀를 맞고, 끊임없이 완벽함의 기준에 빗대 측정되면서 여자는 어느새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상실한다. P.179
내가 일상에서 나 자신의 몸과 맺고 있는 관계를 깊이 생각해볼 때면, 때때로 거기서 작동하고 있는 경계의 명령을, 이건 고치고 저건 조심하라는 조용하지만 집요하고 맹목적인 요구를 의식하고는 깜짝 놀란다. P.186
입술은 너무 밋밋해서 립스틱을 발라 색을 입혀줘야 해. 머리카락은 생기 없고 뭉쳐 있어. 그리고 피부, 피부는 리바이탈라이징하고, 하이드레이팅하고, 스무딩하고, 토닝하고, 밸런싱하고, 컨투어링하고, 퍼밍하고, 플럼핑하고, 데일리디펜딩하고, 샤인컨트롤링하고, 타이니라인미니마이징하고, 안티에이징하고, 안티옥시다이징하고, 학위 취득만 빼고 다 해야 한다. P.187
이 책에서 이 문구가 제일 웃겼다 ㅋㅋㅋㅋㅋ 내가 아는 피부 관리에 대한 용어는 다 나왔다. 부풀리고, 정돈하고, 생기있기 만들고, 윤기나게 만들고, 잡티 제거하고, 톤업하고, 별 오만가지 쌩쇼를 다 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꽤 자연스럽게 소비주의의 광란에 휩쓸렸고, 신용카드 빚을 가당찮을 정도로 졌으며, 인정하기 싫을 만큼 많은 시간을 백화점 의류 진열대들을 뒤지며 보냈고, 탐욕적이고 일관성 없는 방식으로 쇼핑을 했다. 이런 행동은 대부분 당장 눈앞에 있는 대상보다 더 복잡한 무엇을, 요컨대 직물과 실로 마술처럼 직조해낸 정체성, 자신감, 페르소나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그 시절에 나에게는 남자들에 대한 집착도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버티고 있었다. P.287
특히, 내가 갈망하지만 내게는 없다고 느껴지는 자질들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 마치 그런 자질들이 전염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 나에게도 힘과 능력이 스며들게 해줄 것만 같은 남자들에 대한 집착이었다. …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나는 안전해질 텐데, 그러면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게 증명될 텐데, 그러면 나도 안착할 수 있을 텐데. P.288
소비주의는 정서적 공허감을 먹고 번성한다. 허하거나 자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거나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상태를 외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힘은 매우 유혹적이며, 나는 그 미끼를 물 완벽한 낚싯감이었다. 나는 젊고 확신이 없었으며, 욕망은 내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니까. P.289
남자의 성적 이상은 신속하고 빈번하며 초점이 잡혀 있어서 ,당장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 먹는 일과 비슷하다. 여자의 성적인 이상은 더 한가롭게 깊은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대충 먹는 샌드위치보다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식도락 요리에 비유된다. 많은 생각과 많은 계획과 치장, 상상, 오랜 준비 시간을 보낸 뒤에야 나서는 만남인 것이다. P.308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다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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