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원래는 <오마이 뉴스>에서 연재를 하던 글이 인기를 얻어 책으로까지 진화한 케이스다.
저자 양민영씨는 운동의 매력에 빠져들던 와중, 체육관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적 구조와 분위기를 감지하고,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연재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책의 앞쪽은 운동을 하면서 겪은 개인적 성장을 다룬 에세이로 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뒤쪽으로 가면 격투기 선수 론다 로우지, 피겨 스케이터 토냐 하딩,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 등 유명한 여성 운동선수의 일생을 조명하며 그들이 겪었던 성차별적 시선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다.
인상적인 문장들
이전에도 나는 내 몸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몇 번의 사랑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운동을 열심히 했던 시기에 사랑도 시작됐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르시시즘을 유발하는 것 같다. p.29
남들 다 하는 학회를 뒤로 하고 오래 전부터 운동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후보군에 있던 또 다른 운동인 요가는 뻣뻣한 나에게는 영 맞지가 않았다.(ㅠㅠ)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둔한 일상 속에서, 나에게는 격한 움직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리고 내 몸 하나쯤은 내가 보호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복싱 동아리에 가입했다.
첫 시간, 초보들끼리 모아두고서 관장님이 거울을 보며 기초 자세를 연습하라고 코칭해주셨다. 일단, 다 같은 초보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에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복싱장으로 이끄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거울로 내 몸의 동작을 관찰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갈수록 자신감이 붙고 그 모습을 사랑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르시시즘을 유발한다. 최근 들어 바디프로필을 찍는 친구들이 주변에 참 많아졌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노력의 결과가 우리에겐 참 중요한 것이다.
근력 운동을 배운 일이 계기가 되어,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존재감도 갖지 못하던 부위들을 움직임으로써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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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를 하면서 일정한 형태의 몸을 유지하는 데서 벗어나 몸의 기능을 향상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p. 33
크로핏을 처음 배우러 갈 때의 일이다. 우선 처음 해보는 운동이라 너무 긴장됐다. (지옥의 운동이라고도 하던걸)
하지만 첫 시간 체험을 하고 완전히 빠져들어버렸다. 그토록 원하는 격렬함이었다!!! 이후 WOD를 여러차례 경험하며, '이런 동작은 도대체 왜 하는거지'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코치님께 여쭤보게 되었다. 그리고 해당 신체부위를 집에 와서 찾아보고 그림을 그려 정리해보았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관심이 내 몸에 대해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 허벅지는 다 똑같은 허벅지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 여기를 대퇴근이라고 부르는구나', '여기는 대둔근이구나' 하며 구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힘든 동작들을 할 때에도, '이걸 왜 하는거지'가 아닌 '이 쪽 부위가 당기는 느낌이 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기를 드는 건 장미란 선수만 하는건줄 알았는데, 많은 여성분들이 엄청나게 무거운 역기로 운동을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신선했다! 복싱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어제도 지망생이었고 오늘도 지망생이며 어쩌면 영원히 지망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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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꾸준한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p.43
운동은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는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최적의 활동이다. 어제보다 확실히 더 건강해졌고, 어제보다 확실히 더 노폐물이 빠져나갔다는 생각. 그런 종류의 자기 확신이 참 중요하다.
인생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닌 것 같을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인내일 것이다. 진정한 주체가 될 때까지 인내하며 힘을 기르는 것. 어리석은 마음을 다독이며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보면 인생도 결코 복잡하지 않다. 맨몸으로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이 운동처럼 말이다.
필라테스를 배울 때, 밖에서 보면 '쟤네들 왜 저러고 있으면서 힘들어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는 자세를 많이 했다. 근데 막상 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다른 기구 없이 매트만을 가지고 배웠던 필라테스 수업은 속근육을 발달시키는 자세들이 참 많았는데, 그 때 코어근육이 많이 발달했다고 느낀다. 10초만 더, 5초만 더, 1초만 더, 그런 인내심이 사람을 더 강인하게 만든다. 운동을 할 때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복싱만 해도 스파링 3분을 하고 1분을 쉬는데, 라운드를 거듭해갈수록 그 3분을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는데 심지어 공격을 날리고 피하고 날쌔게 움직이기까지 해야 한다. 그 때마다 링 밖에서 동료들과 관장님이 '10초 남았다!!!'하는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10초를 최선을 다해 버텼을 때 짜릿함이란!
운동은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들을 툭 던져주고 쿨하게 다시 일어나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제까지 어떤 운동을 거쳐왔고 그 속에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예전에 필라테스 수업을 들으면서 강사님이 한 가지 숙제를 내주셨었다.
"운동에 따라 자신의 일생을 기록해보기"였다.
어릴 적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배웠던 경험부터, 킥보드 가지고 친구와 싸웠던 경험, 학교 끝나자마자 달려갔던 트램폴린(방방), 2단 줄넘기(더블 언더라고 부르더라고요), 중학교 때 수행평가 때문에 시작했지만 너무 빠져들어버린 배드민턴, 생존수영, 대학교 수업시간에 수강했던 테니스 등! 운동을 기준으로 내 인생을 돌이켜보는 것도 하나의 신선한 경험이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기를 추천드린다!
페미니즘 책이라고 써있지만, 그저 운동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읽더라도 읽기 즐거운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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