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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줄이고 행복에 가까워지고 싶을 때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_ 하미나 _여성의 우울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들

by 파랑코끼리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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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이진 교푸쇼도 비슷한 예이다. 이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심박동이 빨라지며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몸을 떨며 공황발작을 겪는다. 이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자신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갖는다. 52

문화권 증후군. 그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후군이다. 우리나라에는 화병이 있다

미국에서 수입된 DSM은 증상을 분류하는 기존의 방식을 바꾸고, 정상적인 행동과 상태, 그리고 병적으로 여겨지는 것 사 이에 경계선을 새로 그었다. 이는 정신질환, 나아가 스스로를 이 해하는 자아에 관한 믿음 역시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수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55

이렇게 미국을 통해 들어 와 보편화된 정신질환의 각기 다른 이름들은 지금 여기 한국에 사는 여성들의 고통을 얼마나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56

하지만 DSM과 ICD 체계는 특정한 전문가 집단, 특히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 계층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설명 방식이지만, 이 지식을 만드는 데에 한국의 이삼십 대 여성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DSM이 표준화한 '우울' 은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우울을 얼마나 잘 설명해줄 까? 우리의 우울은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한낮의 우울』을 쓴 미 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의 우울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64

무엇이든 개발되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 다. 정신과 약도 마찬가지이다. 약물의 새로운 효과를 발견했다 고 하더라도, 제약회사가 이를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시장 성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 약이 팔리려면 우울증 환자가 필요하 고, 조현병 약이 팔리려면 조현병 환자가 필요하다. 제약회사는 잠재적인 환자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가름한 뒤, 시장성이 있다 고 판단될 때 약을 개발한다. 약이 개발된 후에는 공격적인 마케 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질병을 알려 잠재적 환자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약물의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한 뒤에도 시장가치가 없다 고 생각하면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다. 94

한국은 특별히 더 자본 위주로 (의료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잖아 요. 또 모든 진단 시스템이 미국에서 들어온 거기도 하고요. 근데 그 시스템을 만들고 돈을 주는 게 약을 만드는 회사잖아요. 저는 이 시스템이 너무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지고··• 진단을 받으러 들어간 그곳에서 단 몇 분 사이에 이 사람이 어떤 원인으로 이렇 게 됐는지 절대 알 수 없거든요. 그걸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 자 체가 아니라고 느껴요." 109

책 읽기는 어린 시절 나의 도피처였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 었다. 아무리 슬프고 공허하고 불행해도 책을 집어 들어 읽는 순간만큼은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 낯선 시간, 낯선 장소에 있는 주인공들에게 고스란히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다. 더 이상 내 상 황에 몰입하지 않을 수 있었다. 책은 언제나 변덕스럽지 않은 사랑을 주었고, 나를 두고 떠나지도 않았다. 글쓰기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글쓰기란 참으로 신비한 면이 있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내용이 일관적이다. 129

 


우울감이 갑작스레 파도처럼 밀려들때면 나는 책을 찾아헤맸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런 감정도 이런 생각도 괜찮다고 말해줄만한 책들을 찾아헤맸다. 영화도 포함이다. 영화는 약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인생과 감정, 글고 때로는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을 도덕적 잣대로부터 자유로이 보여주는 창과도 같았다. 나에게는 그랬다. 콘텐츠 산업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소 방대한 산업이긴 하나,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저 한 사람이 느끼는 것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괜찮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작업을 어떤 식으로 해낼지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소설을, 에세이를 써야하나, 혼자서 단편영화를 찍어야하나,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 것이 영상 작업이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유투브를 한다’라고 말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래서 더 자유롭고, 조금은 덜 눈치보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장이었던 것 같다. 글이든 영상이든, 내가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위로받을, 공감받을 곳 하나 없다고 느꼈을 때, 외롭고 불안하고 슬픈데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고 무섭다고 느꼈을 때 찾았던 것이 책과 영상이었던 것처럼, 세상의 그 누군가에게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나의 경험과 내가 느꼈던 막막함과 우울과 불안과 그렇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모든 감정들을 드러냄으로써, 위로가 되기를.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가 조금은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오랫동안 고통에 전 사람이 새로운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사 람들은 낯선 행복보다는 익숙한 고통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131

<불행중독> 이 떠오른다. 익숙한 불행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자아이는 정서 인식 발달을 저해받으며 자란다고 생각해요.
"친절하다, 사근사근하다'라는 말처럼 사회친화적인 모습을 보 이도록 강요받죠. 그러니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이 를 표현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일어납니다."
장형윤 교수는 분노가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우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양육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내 것이 아 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때, 감정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라고도 했다. 감정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상황일 때, 우리는 내 안에서 생겨난 감정 자체를 부 인하게 된다. 어떤 것도 느끼지 않고 살아가야만 할 때, 무서움을 느끼는데 남들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당장 누군가에게 맞지 않는 게 더 중요할 때, 폭력이나 학 대로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을 때, 감정을 느끼는 게 생존하는 데 에 있어서 너무 거추장스러운 일일 때, 온전히 감정을 느끼는 게 너무 괴로운 일일 때…   140

엄마의 경우는 이해가 가기 때문에 더 힘들다. 엄마를 향한 감정은 복잡하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엄마에게 가장 이 해받고 싶지만, 엄마와의 대화는 늘 평행선을 달린다. 계속 시도 하고 계속 좌절한다. 내 고통을 말하면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말 한다. 엄마 역시 내게 이해받기를 원하고 내게 자신의 감정을 해 소하려 하기도 한다.144

할머니는 가족들이랑 계속 잘 지내보라고 하는데 알 바인가요? 제 인생 아니잖아요, 사실. 도망치는 것도 용기다. 피할 수 없으 면 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서라도 피해라. 도망치는 것도 반복 과 요령이 필요한 거니까 많이 배워두라고.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니까 갖다 버려라. 이 말이 하고 싶어요." 155

어른스럽고 든든해 보였던 남성 애인은 실상 본인 의 엄마에게서도 독립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은 돌봄이 필요해 연인 관계를 택했는데, 지나고 보니 도리어 자신이 돌봄 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안 됐다. 172

여자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를 지키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종종 관계 를 선택하곤 했다. 나를 바꿔야만 그가 내게 머문다면, 기꺼이 나 를 바꾼다. 욕망을 숨기고 분노를 누르고 고통을 견딘다. 그렇게 점차 관계 속에서 나는 지워진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를 내가 수행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여자들은 이 모든 것을 뒤엎는다. 172

수정이 빨래를 안 하면 그 빨래를 싸서 자기 엄마에게 갔다.
엄마가 반찬을 해주면 그걸 가져와 자기 혼자 먹었다. 이혼소송 중에 오간 진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사 노동을 하지 않 았기 때문에 50만 원씩만 준다.' 수정은 가정폭력쉼터에서 만난 생존 여성들의 증언을 전하면서 가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남 탓하는 것, 비난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 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세월호가 침몰한 날 남편은 뉴스를 보며 말했다."쟤네 돈 좀 받겠다. 177

여성들이 너무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다른 연결망이 없으니까 남성과의 일대일 연애로 그걸 풀려고 하는 것 같거든요. 긴밀한 관계를 찾는 데에는 영적인 갈망도 있다고 느껴요. 그 갈망을 섹 스라는 의식으로 나름대로 푸는데, 굉장히 불평등하고 합의 없 는 의식이죠. 그 의식을 통해 강화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대상화되는 경험인 거죠.
침대에서 수행하는 역할극 있잖아요. 포르노 감수성의... 여자로서의 역할극. 남성이 누르고 여성은 눌리는. 그렇게 침대에서 하 고 나면 일상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역할극을 수행하게 돼요. 여성은 그런 의식을 반복하면서 당하는 욕망을 학습하고, 그걸 ㅈ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 자기 삶을 망치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순종적인 어머니가 되고 ..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를 내가 수행하게 되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183

연애 관계는 여성이 대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몇 안 되는 경험이다. 가족 안에서도 회사 안에서도 받기 힘들었던 인정의 감각을, 연애는 준다. 섹스는 ‘누군가 나를 간절히 원한다’ 라는 감각을 준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일시적이며 허구적인 힘이다.  185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떄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185

사랑을 연애를 구원으로 생각하는 것. 나도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지도. 책의 171쪽에 나온 말마따나, ‘연인은 여자들을 행복하게도 우울하게도 했다.‘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가 반복이 됐다.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크게 실망했고, 그 기대를 가지는 나 스스로를 비난했다. 남자를 기죽이는 존재가 된 거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보호받고 싶고 부양받고 싶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불안이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요해서‘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도 충분하고, 남자를 향한 사랑은 부수적인 것일때‘ 그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친구는 아플 때 부르기엔 아직 어렵다. 새벽 3시에 당장 내 곁에 와달라는 연락을 친구에게는 하기 어렵지만, 지난주에 만난 데이트 상대에게는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171

사랑을 받는 일은, 사랑을 주는 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곁에서 사라지면 멈춰진다. 사랑을 주는 일은, 우리 마음 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186

피자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써먹어야지.

한국은 사회 변화가 워낙 급격했잖아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 식 변화도 무척 빨리 이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결혼할 상대를 본인이 직접 결정하지 못하거나 (상대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사 람과) 결혼을 했고, 그게 삶의 대부분의 것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 았죠. 여성의 생애주기에 주류 모델이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 습니다.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내 행복을 보장할 리 없다는 각성 들이 이어지고, 좀 더 가벼울 수 있는 연애 관계도 디지털 성범죄 가 만연해지며 우르르 무너지고... 그런 것들이 여성 인구 전체 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삼십 대 여성은 더 교육받은 세대이고, 더 깨친 세대이지 만, 과도기 단계에 놓인 세대이기에 막상 현실에서 스스로 기대 하는 수준의 삶을 꾸리기는 어렵다.  192

저 역시 가족이나 남자친구가 우울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열 기설기 조합해 보면 어떤 한 명이 가해자가 아니에요.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아니거든요. 나를 우울하게끔 했던 이놈의 대한민 국, 이놈의 사회."
...
능력 있는 여성은 갈수록 많아지지만 이들의 성취를 반영하여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도록 돕는 일자리는 드물다. 여성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세상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를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이 지금 의 이삼십 대 여성이다.
193

이삼십대 여성의 우울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노동 문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 속 노동자이기 때 문에 겪는 고단함에서도 비롯된다. 이들에게는 아플 시간도 없 다. 학창 시절부터 끊임없이 스펙을 쌓아야 하고, 간신히 들어간 회사 내에서도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경신을 요구받 는다. 이제는 '능력뿐 아니라 '몸'도 경신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잘해내면서 주식 투자와 부동산 공부도 해야 하며, 매일 헬스클럽에서 바벨을 들고 닭가슴살을 먹어야 한다. 이 얼마나 피로한 삶인가. 성장 중심 사회에서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 않는 사람, 망설이는 사람, 아파서 속도가 더딘 사람은 곧잘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 해내지 못하는 것인데, 이 상태를 병리적으로 본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에게 우울증 약이나 ADHD 약 대신, 이들을 해변으로 보낸 후 트로피컬 칵테일 한 잔을 쥐여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번아웃 증후군, 공황장애, 우울증, ADHD... 사람들이 병명 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라도 지금의 고단함을 인정받고 쉬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195


한국에서 하루에 36명씩 일어나는 자살을 막기 위한 제안들 중 -
돌봄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바로 바쁜 삶이다. 일에 치인 사람은 자기 돌봄을 비롯한 모든 돌봄에 소홀해진다. 한국은 효율과 쓸모를 중심으로 발전해 오면 서 이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이들을 제물로 바쳐왔다. 그 속에서 살 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며 그들도 언젠가 늙고 병든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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