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비혼주의자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서도, 여자 혼자서 잘 살아가는 스토리에는 관심이 많다. 결혼을 하든 말든, 어쨌든 스스로 우뚝 설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다른 챕터들보다 이 챕터가 가장 눈에 들어왔고,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 주제였다.
<나 데리고 살기 매뉴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솟아나면 다정한 말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그만. 멈춰. 안 좋은 생각 멈춰.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한다.
아침이면 유독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무의식과 의식이 뒤엉켜 존재론적 고찰에 들어서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듯한 숨막힘을 느끼기도 한다. 힘차게 시작해야할 아침에 근본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우울감이 나를 끌어내릴 때가 자주 있었기에, 저자의 이 말이 나에게 참 깊이 와닿았다. ‘멈춰’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정한 팟캐스트를 듣는 것. 나도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부드러운 음악이나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팟캐스트, 다정한 오디오북을 틀어놓는다. 블루라이트를 하루종일 보고 있기 때문에, 쉴 때는 되도록 귀로 충전을 하려 한다. 팟캐스트를 듣다보면 내가 진행자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나에 대한 데이터가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가진 불안증세에 대한 자각을 하고 2주에 한번씩 상담을 받는다.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이 들이닥칠때는 나만의 응급처지 매뉴얼이 있다. 내 감정 가만히 들여다보기, 내 몸 밖에서 나를 3인칭으로 바라보기 등등.
어디선가 본 글인데, 정신이 미래에 가있으면 불안하고, 과거에 가있으면 우울하단다. 나의 정신은 과거와 미래를 하염없이 오가며 슬픔과 우울과 불안과 걱정을 넘나들었다. 이럴 때마다 내가 가장 편하게 찾는 것은 친언니였다. 누구보다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절한 짤(?)과 썰을 들려주며 내 마음을 잘 달래주고는 한다. 이런 언니가 있어서 너무 축복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지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감정은 들어왔다 나가는거라고 하는데, 그 감정을 느낄 때면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아, 나 지금 우울하구나’ 이게 잘 안된다. 근데 또, 그러다가 괜찮아지는 걸 보면 감정을 잘 다루는 방법을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몸에 대한 시행착오로 내가 편한 식사량과 몸무게를 찾았다. 주 4회 근력운동, 컨디션에 따라 배게를 번갈아가며 쓴다. 일을 미루면 우울이 심해지므로 적당히 해내야하고, 최소 3일 후 스케줄을 미리 정하면 불안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매일 근력운동에 도전하고 있다. 감정도, 생각도, 꽤나 기복이 심한 나를 붙들어줄 수 있는건 루틴이다. 아무리 귀찮아도 일단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러고서 그냥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시작한다. ‘진짜 10개만 하자’ 그러면서 조금씩 늘려 결국 하루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면, 괜시리 뿌듯해진다. 오늘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100프로 나만을 위한 행동을 했다는 뿌듯함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몸이 잠들어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게 싫어서 오늘도 몸을 움직인다. 또 나는 엄청난 즉흥적인 성격을 가졌는데, 그게 나의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은 누구에게도 계획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발전(?)했다.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약속의 횟수와 종류로 일상을 채우다 보니, 불확실한 일정에서 오는 불안이 감소한다.
잠이 잘 안오면 명상어플 소리를 틀어놓고, 술 많이 마셨을때는 물을 꼭 두 잔 마시고 잔다
나를 돌보는 행위에는 매우 섬세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하고 외로우면 백색 소음을 틀어놓는다. 5곡 정도 틀어놓고 자동으로 꺼지게 해놓으면 어느새 잠들어있다. 이런 소리들은 잡념을 지워준다. 우울하면 무드등을 켜고 불멍기구를 점화한다. 생일선물로 받았는데, 정말 잘 쓰고 있다. 알콜을 대용량으로 사놔야겠다. 고립감을 느낄때는 에세이를 읽는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문구가 나올때 꽤나 많은 위로를 얻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저녁에 해물김치전 + 막걸리를 먹는 걸 좋아한다. 매일 과일 한 줌씩은 먹으려고 한다. 종류는 상관없다. 주로 귤, 방울토마토, 바나나로 이뤄져 있다. 짜증이 나면 방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주위를 환기시킨다. 짜증날때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하면 안된다.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떠다닐때면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고 나면 정신이 훨씬 맑아진 기분이 든다. 나를 잘 챙겨줬다는 기분도 들어서 일석이조다.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자유수영을 하러 간다. 예쁜 꼬까수영복을 입고 참방거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싫어하는 일 하지 않기, 무리할때는 알람 울려주기,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에 데려가기, 제 3자의 평가가 어찌되었든 수고한 것을 알아주고 칭찬해주기, 아무리 바빠도 밥 챙겨먹이기
성인이지만 우리는 어린시절의 ‘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달래주고, 들어줘야 한다. 혼자 밥 차려먹기 귀찮아도 꼭꼭 밥은 잘 먹여야 예민해지지 않는다.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면 잠시 밖에 나가 공기라도 쐬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며 심호흡을 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 속에서 노력한 나의 모습을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에게 끝까지 다정할 것.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세세하게 알아가는 일. 상처받기 쉬운 나에게 상처받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상처를 줄 거리들을 가지 치고 안전한 길을 터주면서. 누구보다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나임을.
목표만큼 글을 썼다면 보상으로 넷플릭스 에피소드 2개 보게 해주기, 가방에 매달 귀여운 뱃지 하나 사주기. 나를 가장 잘 아는 것도 나고, 그래서 더 세세하게 나를 보살필 수 있다. 상처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나만이 해줄 수 있다. 요즘 참 그런 걸 많이 느끼고 있고, 그래서 이 책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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