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뒹굴던 책을 선물받았다. (정말로 뒹굴고있었음) 제목이 너무 힐링스러운 나머지 부담스러워서 한참을 읽지 않고 책장에만 꽂아두고 있다가, 최근에 마음이 너무 힘들때 문득 떠올라 펼쳐본 책이다. 그리고, 진작에 읽었더라면 마음이 좀 더 빨리 편해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감이 필요한 사람, 그리고 공감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만한 실용적인 책이다. 이걸 읽으면서 나의 대화 패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네가 부모님을 너무 관성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니.’ ‘내가 이렇게 하면 우리 부모는 반드시 이럴 것’이라는 생각.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p.44
노인이지만 아버지는 톡 건드리면 깨져버리는 유리 조각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모진 세월을 버텨낸 생존자다. 당신의 오늘을 있게 한 산맥이다. “당신이 아버지를 만만하게 보고 과잉보고 하는 것 아니냐. 아버지를 너무 단순한 존재를 여기는 거 아니냐. 당신은 생각 깊은 성인이고 아들 잃은 슬픔도 견뎌내는 존재인데 반해 아버지는 부끄러움도 없고 작은 고통도 견딜 수 없는 약한 존재냐.”고 물었다. 질문을 듣다가 그는 한참 울었다. p.183
어머니와 크게 말다툼을 했던 때가 있다. 어머니는 나의 일상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지만, 나에겐 흔해 빠진 일상을 말하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무심코 이런 말을 던졌다. “내가 말해도 어차피 엄마는 판단하고 공감 안해줄거잖아.”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상처를 받으셨다. 각종 심리학 서적들을 읽으시며 우리와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계신데, 그렇게 당신을 틀에 가둬서 생각하는게 섭섭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차 싶었다. 나도 어머니를 너무 관성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건 아닐까.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고들 하지만, 나도 일련의 연애를 통해 공통적으로 지적받았던 부분들을 고치려고 부던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상대방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안된다고들 할까. 정작 본인은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기회를 얻고싶어 하면서.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p.49
‘그러면 안되지’라는 말을 하는 건 사람을 어리석고 표피적인 존재로만 상정하는 틀에 박힌 생각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시선이다. P.50
그녀의 격한 그 말은 ‘다 부수고 나도 죽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 부수고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지금 내가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말이다. p.166
상대가 극단적인 발언을 했을 때, 예를 들면 "나 회사 때려칠거야!!"
그 말을 듣고 "야.. 그래도 현실적으로.."라며 나무라거나 막아서는 반응을 보이는 건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도움도 안될 뿐더러, 공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 힘든 소리만 늘어놓는 것도 분명 자제해야 하지만, 듣는 사람도 상대가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들어주려는 열린 귀를 갖고 있어야 하겠다.
과도한 나 드러내기는 평소에 한 개별적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채 방치된 삶들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p.55
강남이라는 거대한 부잣집에서 일하다 밤이면 원룸이라는 문간방에 틀어박혀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연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자기 존재를 민폐로 인식하는 청년들. 죽은 듯 사는 청년들. p.56
문득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 생각나는 문장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공감을 받기는 커녕, 인터넷을 잘 모르는 답답한 '노인'으로 치부되며 인격을 무시당하던 블레이크. 그런 그에게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민 여성. 낯선 타인으로부터 공감과 인간적인 관심을 받게 되자 비로소 억울함이 풀리던 장면이 기억에 진하게 남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힘이 공감이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p.116
공감을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124
잘 모르면 우선 찬찬히 물어야 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하는 단서를 달고 상대방의 상황, 마음에 대해 어떤 것이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된다.
자기 마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기꺼이 진다. 억울함이 풀려서다.
타인의 경계를 침범해서 마구 짓밟고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둥 진심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둥 자신이 피해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p.179
주옥같은 말들이 너무 많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당시, 상대방의 말에 집중도 잘 못하겠고 대화가 자꾸만 표면적으로 겉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책을 읽은 후 어떤 부분에서 더 노력해야겠는지 명확해졌다. 함부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진정으로 억울함을 풀 수 있게 공감해주는 기술. 누구나 진심어린 공감을 받고 싶어 하니까, 나부터 먼저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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