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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영화 추천!

[에세이] 디지털 취약계층은 우리 곳곳에 있다 (feat. 나, 다니엘블레이크)

by 파랑코끼리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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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있었던 일이다. 공항에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매우 난감해하고 계셨다.

 

 

"아이고~ 나같은 노인네는 어떻게 가라고 그런댜"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많이 변했다. 입국은 물론 출국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할머니는 캐나다 시민권자로, 캐나다로 출국하려는 분이셨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ArriveCan이라는 검역설문앱을 필수로 설치하고, 설문을 완료하지 않을 경우 입국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심한 경우 설문을 마치지 않은 승객에게 벌금을 부과하면서까지 말이다.

 

 

ArriveCan 어플리케이션

 


할머니는 핸드폰을 두 개나 갖고 계셨지만 번호도 개통되어 있지 않았고, 조작법도 잘 모르셨다. 심지어 설문앱을 설치하고 설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메일이 있어야 했지만, 할머니는 그 흔한 이메일 하나조차 갖고 계시지 않으셨다. 이 할머니를 도와드리지 않으면 할머니는 진짜로 출국을 못할것만 같았다.

 

할머니를 컴퓨터로 이끌고 하나 하나 설명하며 진행해드렸다. 먼저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핸드폰 인증 없이도 다행히 이메일을 만들 수 있더라. 할머니의 수첩에 기억하기 쉬운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꼼꼼히 적어드렸다.

 

 

"할머니~ 이게 이메일이에요. 이게 비밀번호구요. 아시겠죠?"

"아유 난 몰러~ 개인정보 그런거 모르니까닝 아가씨가 알아서 해죠. 필요한 정보는 다 줄테니껜"

 


사기당하기 딱 좋은 멘트다. 걱정이 된다.
드디어 검역설문 사이트에 입성(?)했고, 캐나다 시민권자지만 영어를 못 하시는 할머니에게 하나 하나 질문을 여쭤보며 답변을 선택해나갔다.

 


"할머니~ 거기 가서 머무실 집 있으시죠~??"

"어어엉 있지~ 할아부지랑 나랑 이렇게 둘이서 살지~"

 

도와드리면서도 하나도 번거롭지 않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매우 러블리한 할머니였다.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가 나왔고, 화면에 나타난 코드 여섯자리를 노트에 크게 적어드렸다.

 


"할머니~ 캐나다 들어가실 때 뭐 보여달라 그러면 이거 보여주면 돼요~ 아시겠죠??"

"요..이거 이러케 보여주면 되는거여??"

 


그렇게 미션을 클리어했고, 할머니는 연신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신다.

 


"아유 아가씨 이름 기억해야지...."

 


내 명찰을 뚫어져라 보시더니 몇 번 입가로 되뇌이신다. 그러더니 잠시 후 또랑또랑하게 내 이름을 크게 불러 나를 찾으시더니, 편의점에서 사오셨는지 음료수를 다섯 병 건네주셨다. 이제까지 이런 저런 자잘한 감사인사를 받아봤지만, 이 날 받았던 음료수 봉지가 나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덥혀주었던 것 같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 또한 평생 목수일을 하던 블레이크 아저씨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가지만, 복잡한 행정절차에 울분을 터뜨리는 모습을 담아냈다.

 

 

 자신은 의뢰인도 사용자도 아니고,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닌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울분.

 


세상이 빠르게 흘러가는 건 알겠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인터넷 사용이 어떤 노인 분들에게는 '뭔지 모를 어떤 것'이다. 핸드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상상도 안 될지 모르지만, 있다. 그리고 꼭 그런 전자기기를 갖도록 강요하는 모든 상황이 그 사람들에게는 세상 어리둥절한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면 그런 사람들에게 같이 한 걸음 다가서서 도와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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