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방학숙제로 쓰기 시작했던 그림 일기.
그땐 참 아무 말이나 썼다. 지금 보면 피식 웃음만 나온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일기를 꽤나 꾸준히 썼던 것 같다.
그 질풍노도 사춘기의 소용돌이치는 고민과 감정을 풀어낼 곳이 일기장 뿐이었나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었던지라.
대학생이 되어서는 일기를 많이는 쓰지 않았다.
아, 워드 파일에 가끔 끄적인 흔적들은 남아있다.
그러다가 다시 일기를 쓰기로 다짐한 건, 어느날 내려간 본가에서 발견한 어릴 적 일기장 때문이었다.
너무 웃기더라. 읽으면서 눈물 날 정도로 푸하하 웃어댔다.
10년 전, 20년 전 나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있는 그 일기장이
나의 어린 시절을 증명해주듯 철없고 해맑은 아우라를 풀풀 풍기며 집 한구석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른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일 년 일 년이 손에 쥔 모래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으니,
나는 그 시간을 더 생생하고 간절하게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다.
인생에서 정말 힘든 순간순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일기의 공이 크다.
어두운 방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문득 일기장을 꺼내서 읽기 시작하면,
나한테 이런 쾌활한 면도 있었지, 그래 나는 이런 걸 좋아했었지, 하며
다시금 힘을 얻기도 한다.
어렴풋이 흩어져있는 나의 개성을 보다 확실하게 밀집시켜주는 과정인 것 같다, 일기를 쓴다는 건.
확신없고 자신없던 내가 점점 주관을 세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재미있다.
그리고 10년 뒤 내가 지금 내가 쓰는 일기를 읽을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일기처럼 확실한 타임머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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