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꼭 하나씩은 보이는 편의점을 둘러싼 인물들을 주제로 한다. 편의점은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제목과 소재를 보았을 때, 신선함보다는 편안함과 익숙함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몰랐는데, 2020년부터 편의점 업계와 경찰이 함께 협동하여 아동학대를 막는 '도담도담' 캠페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 편의점에 갔다가 우연히 본 포스터에 호기심이 생겨 검색해보았다. 이런 캠페인이 생길 정도로 편의점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관심이 필요한 작은 곳까지 눈길을 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소설 줄거리
염 여사는 편의점 사장이자 은퇴한 역사 교사다. 어느날 우연한 사건으로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사람 됨됨이가 좋아보이는 그에게 편의점 야간 알바 일자리를 제안한다.
노숙자 독고 씨는 지나친 알코올 섭취로 기억을 잃었고 말도 어눌하다. 하지만 그에게 고마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염 여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그와 편의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알바를 병행하고 있는 시현, 생계형 알바 오 여사, 매일같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5천원 어치 소주와 안주를 사다가 삶의 애환을 달래는 가장 경만, 희곡작가 인경, 염 여사의 망나니 아들 민식, 흥신소 직원 곽 씨 등등. 다들 나름의 사연과 삶에 찌든 애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다들 날이 선 날카로움과 편견어린 시선으로 독고 씨를 대하지만, 이내 그로부터 치유를 받고 따뜻함을 되찾게 된다. 그들은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것처럼 생긴 독고 씨에게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
인상깊은 구절들
사장님은 알바생에게 시켜야 할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했고, 솔선수범했으며, 무엇보다 직원들을 귀하게 대했다. '사장이 직원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원도 손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좋은 사장, 좋은 상사를 잘 표현한 구절같았다. 아랫사람을 귀하게 대하는지는 누구보다도 아랫사람이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직원들로부터 존경을 얻는 상사가 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만큼 유니크한 존재인 것 같다. 나도 상사들의 특성을 눈여겨 보며, 나는 어떤 상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겠다.
약한 사람에게 진상을 떨다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자 꼬리를 내리는 꼴마저 참으로 진상스러웠다.
가장 미워보이는 사람이 바로 강약약강형 인간이다. 강한 사람에게는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며 아부를 떨고, 이름만 불리면 부리나캐 달려가는 사람. 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권위를 세우고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내세워 명령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란다.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단다. -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트라우마를 직면해야 한다고 독고 씨를 다그치던 며칠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경 역시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그녀는 통화 버튼을 힘껏 눌렀다.
살다보면 피하고 싶은 상황들에 마주치게 된다. 불편하고, 나의 방어기제를 자극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황들도 마주한다. 항상 좋은 것만 보면서 살고 싶지만 인생은 아무래도 동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더라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때 그때 마주하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소설 감상평
꽤나 현실감이 있고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노숙자에게 선뜻 일자리를 제안한 염 여사는 선함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종교적인 배경과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선행의 동기 중 하나였다. 또, 다들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독고씨로부터 치유받지만, 사실 독고씨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척척박사였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느낀 것을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전달한 것에 불과했다.
완전하게 악한 사람은 없고,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세지를 소설 속 한 구절로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책 리뷰(함께 독서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추천] <사랑 수업>, 윤홍균 _사랑에 고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0) | 2022.07.21 |
---|---|
[소설책추천]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_어릴 적 추억과 상처를 더듬어보는 시간 (0) | 2022.06.29 |
[인문책추천]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_말로 다 할 수없던 욕구들에 대하여 (1) | 2022.03.18 |
[소설책추천] <월 200도 못 벌면서 집부터 산 31살 이서기 이야기 1, 2>, 이서기_직장/부동산 고민에 골 싸매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들에게 (0) | 2022.01.19 |
[인문책추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_능력주의의 부작용과 해결책에 대하여 (2) | 2021.09.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