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다양한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세지를 꺼내어 해석해주고 있다. '이 영화에 이런 해석이 있었어?' 싶은 신박한 해석과 더불어 정신심리학의 세계도 더불어 새롭게 배워갈 수 있다. 여기 나오는 영화들을 하나씩 정복해보겠다는 작은 다짐도 생긴다. 이 책과 함께라면 책에 소개된 모든 영화들을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인간의 내부에는 여러 마리의 짐승이 산다. 진화심리학은 그중 하나를 본능이라 부르고, 프로이트는 다른 하나를 충동이라 부르며, 라캉은 또 다른 하나를 욕망이라 부른다. p.64
세상 사람들이 '외도를 하다 자살한 여자'라고 요약할 어떤 이의 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2,000쪽이 넘는 소설을 썼다. 그것이 <안나카레니나>다. p.65
책의 역할은 이런 것에 있다.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이 지닌 복합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돕는 것. 우리가 가진 뒤죽박죽의 기질들을 말로 어떻게든 표현해내는 것. 외향형이냐 내향형이냐 하는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덕스러움을 설명해내는 것. 그래서 소설이 매력적인 것 같다. 사람의 내면에는 무수히 다양한 면이 숨어있고, 그걸 발견해내는 게 참 재미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듯이, 너도 특별한 사람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낙관적 다짐('되어야 한다!')이 강박적 불안('될 수 있을까?')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은 병리적이다... 결연하게 각오를 할수록 그의 불안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p.115
프로이트는 인간이 불행해지는 데 더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 종류의 고통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고장나고 결국 썩어 없어질 '육체', 무자비한 파괴력으로 우리는 덮치는 '세계', 숙명적이라 해야할 고통을 안겨주는 '타인'. 지나친 불안은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성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먹어치우고, 그것으로 내 안의 타자를 일깨운 다음,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그들을 (실제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떠난다. p.183
오늘 나의 성격과 생각은 10년 전, 20년 전 나의 성격과 많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끝도 없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머리띠를 낀 친구를 보며, 나는 '선생님에게 편애를 받으면 학교생활이 편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지나가던 친구를 보며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하며 전전긍긍했다.
중학교 때 마냥 해맑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반에서 그룹을 나누어 크게 다투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벌을 받던 날, 나는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남자애에게 고백을 받던 날, 좋았던 마음보다는 수능을 망칠까 두려운 마음에 거절해버리고 후회했다.
룸메이트와 크게 다퉈버린 날, 나는 그 싸움을 다른 애들끼리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하면 안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수학여행 사진 비용을 잘못 계산해서 반 예산에 구멍이 나 기가 죽어있을 때,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토닥임으로 나는 좋은 어른이 뭔지 어렴풋이 느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거의 반 성격파탄자인 것을 알았을 때, 그 마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꽤 힘든 한 학기를 보내야 했다. 동시에 성격파탄자의 인생은 되려 참 평탄해보인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페이스북에서 오래 전 알던 친구를 재회했을 때, 세상이 참 좁고 나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을 하나씩 흡수하며 성장해왔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글씨체부터 옷 입는 스타일, 말투, 가치관, 나쁜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지금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안에는 그들이 아직도 여러가지 형태로 살아있다. 그걸 영화 <스토커>에서는 '살인'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인생의 몇몇 고비들을 특정한 어떤 사람을 상징적으로 살해하면서 통과한다고. 그리고 그 살해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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