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가는 대로 살면 다 잘 될 거 같지?
재밌긴 하겠지, 신나고.
망친 사람은 너야 마고, 길게 보면 말이야.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 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새 것도 헌 게 된다오."
마고는 결혼한 지 5년된 여성이다.
남편 루는 닭요리 책을 내기 위해 매일 저녁 닭요리를 한다.
서로에게 소소하고 귀여운 장난을 치며,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고가 샤워할 때마다 몰래 샤워부스에 찬 물을 끼얹는 루,
서로 더 잔인한 문장을 말하는 대결,
진지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루를 웃기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마고.
그러던 중, 새로 이사온 건너편 남자를 알게 된다.
그는 묘하게 그녀의 눈에 밟히며,
때로는 저돌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그들 사이에 어떠한 신체적 부적절함은 일어나지 않지만,
마고는 이미 충분한 감정적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마고가 루에게 느끼던 자잘한 불만들은 더욱 증폭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마고의 유혹적인 손길을 루가 종종 거절하는 부분이다.
하루는 마고의 서러움이 터져버리고 만다.
마고 :
"이렇게 하려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줄 알아? 당신을 유혹하는 거. 근데 당신은 내 용기를 무참히 짓밟아버렸어."
루 :
"남편을 유혹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해?"
마고 :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 근데 왜 늘 당신 반응은 그대로일까? 난 죽도록 노력하는데 당신 반응은 늘 이렇고. 매번 나한테 남는 건 더 큰 절망감뿐이야."
이뿐만이 아니다. 둘의 결혼기념일, 마고는 남편과 외식을 하러 나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마고는 남편과 대화를 시도한다.
마고 :
"아무 얘기나 해봐"
루 :
"왜?"
마고 :
"그래야 대화를 하지"
루 :
"난 할 말 없는데"
그 말에 마고는 좌절한다. 루는 말한다.
루 :
"대화를 위한 대화는 싫어."
마고 :
"그럼 내가 요새 어떤지 물어보던가."
루 :
"그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거잖아. 뭔 얘기를해 같이 살고 모든 걸 다 아는데."
마고는 당연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이웃집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하고,
서로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더 열심히 꾸미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고.
그러다가 익숙해지고,
서로의 존재가 편안해지고.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내 삶의 일부가 되고.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있어줄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간다.
마고가 남편의 누나와 수영장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누나 :
"요샌 내가 다리털을 왜 미나 싶어. 어차피 우리 남편은 모를텐데.
누구 좋으라고 귀찮게 이 짓을 하고 있지? 결혼이 그렇지, 서글퍼.
물론 난 아직도 남편이 좋아. 반짝 좋다가 10년 뒤엔 별로인 것보단 그게 나은 건가?"
"가끔 새로운 거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
그러자 옆에서 샤워하던 나이든 부인들이 한 마디를 한다.
"새것도 헌 게 된다오."
"그렇죠... 헌 것도 원래 새것이었죠."
마고는 결국 그토록 상처주고 싶지 않았던 남편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만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는 것,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보고 있으면서도 괴로운 장면이었다.
가장 슬픈 장면은 마지막으로 샤워하는 마고에게 찬 물을 끼얹으며
이제까지 자신이 했던 장난임을 밝히는 남편의 말이다.
"그냥 나중에 늙어서 내가 수십 년동안 매일 이 짓을 했다고 고백하려 했어.
그래서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그 말을 듣고 오열하는 마고.
몇 년 후,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된 마고.
이혼 이후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전남편을 보며
마고는 너무나 마음 아파한다.
"살면서 당하는 일 중에 어떤 건 절대 안 잊혀져"
"안녕, 마고."
익숙한 관계와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지만,
사람이 당연스레 느끼는 그 감정에 대해 깊게 파고든 영화가 아닐까 싶다.
지금 가진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유지할 것인지,
새롭고 반짝이는 것에 이끌려 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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