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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함께 독서해요)

[소설책추천] <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_사랑과 인생의 복잡성에 대하여

by 파랑코끼리 2021.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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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좋아하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2020년작 소설, <오후의 이자벨>이다.

어떻게 이렇게 등장인물들 하나하나 입체적이고 생생하고,

심연의 깊은 심리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사랑의 복잡성을 다룬 작품 <오후의 이자벨>


 

책은 주인공 '샘'의 21살 새파란 청년 시절부터 시작해 중년이 될 때까지를 다룬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남자 주인공 '샘'은 파리에서 붉은머리의 여성 '이자벨'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36살의 유부녀였으나 그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고, 

일주일에 2번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엄격히 정해진 시간 속에서 그녀와의 사랑을 나눈다.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과분하고 만족스러워했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녀의 관심과 시간을 더 원하게 된다.

 

그녀에게 모든 걸 다 내어줄 것 같던 그는,

자신의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자벨에게 지쳐가고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에 집중하려 한다.

그러자 이자벨은 그 엄격하던 규칙을 깨고 미국으로 날아와

샘에게 미래를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을 뿌리치고 레베카라는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레베카의 커리어는 기울어가고,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는다.

 

*양극성 장애 :
비정상적 흥분상태인 조증 삽화와 비정상적 우울 상태인 우울증 삽화가 주기적으로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질병. 

 

그녀의 극심한 감정기복과 공격성으로 인해 샘은 레베카로부터 마음이 멀어져간다.

이후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지만,  딱 맞는 여자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이자벨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에 날아가 그녀의 마지막을 보내주며 작품은 마무리 된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순히 불륜과 이혼,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작품의 깊이가 대단하다.

 

샘의 국적인 미국의 결혼관과 한국의 결혼관은 매우 닮아있다.

가정을 꾸리고, 바람을 피우지 말아야 하며, 여러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문화.

 

반면 이자벨의 국적인 프랑스의 결혼관은 이와는 달라보인다.

이자벨과 그녀의 남편은 각각 다른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고 있고,그것을 서로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사랑이라는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다.

 

 

 

샘과 이자벨의 사랑은 지극히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 우리가 매일 만날 수 없고, 우리 관계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은밀해야 하기에 늘 절실하고 격렬했다. 그러다보니 쾌감도 컸다. (p.312) " 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비밀스러운 관계는 짜릿함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을 더 갈망한다는 책 속의 말처럼,

그들은 서로를 더 갈망하면서도 그 짜릿함을 유지하기 위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샘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

 

절약과 자기부정은 내 성장기를 지배한 두 가지 중요한 가치였다. 이제는 모두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다.
p.16

 

폴의 차가운 말에 반격을 가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방어적인 태도로 내 처지를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 그만두었다. 폴이 바라는 대로 해줄 수는 없으니까.
p.24

 

나를 보살펴 줄 사람을 찾는 건 인간들의 공통된 갈망이다.
p.36

 

훗날 인생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경솔한 행동을 저지른 것에 대해 자책하기보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p.71

 

어릴 적부터 내 안에 도사린 두려움,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p.77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감옥을 만들죠. 저는 아직 어떤 감옥을 만들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p.111

 

남자들은 필요에 따라 소극적이 된다. 나도 레베카 앞에서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p.195

 


 

이자벨의 인생관

 

"젊을 때는 그 어떤 속박을 받아서도 안 돼."
p.85

 

"우리 부부는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속마음을 숨기고 대화를 나누기도 해. 그런 게 사랑이야."
p.86

 

"어머니가 해준 말인데 아버지가 연애할 때 '우리 사랑은 영원해'라고 했다는거야. 현실은 전혀 달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에 적대감만 쌓이더래."
p.156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도 하고 애를 낳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기 때문이 아닐까?"
p.162

 

"우리는 상처받는 게 두려워 멋진 미래를 눈앞에 두고 외면하지."
p.364

 

"나는 왜 내 자신을 스스로 부당하게 대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훨씬 더 흥미로운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스스로 차버렸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어. 그동안 마음 속으로 삭인 절망이 너무 많아. 그 절망을 만들어낸 사람은 전적으로 내 자신이야."
p.374

 

"사랑으로 커플이 되어도 상대의 욕구를 다 충족시켜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좋아."
p.246

 

 

 

 

 


 

샘이 잠깐 만났던 여자, 시오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어. 왜 우리는 늘 소유하지 않을 걸 가지려고 할까? 왜 우리는 오래도록  애써서 뭔가를 손에 넣게 되면 금새 질려할까?"
p.97

 

"난 내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남자를 원해. 넌 마초는 아니지만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사람이야. 타인과 유대감을 갖길 원하면서도 독립적이야."
p.99

 


 

샘이 결혼했다가 지독하게 이별해버린 레베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해. 뭔가를 수중에 넣어도 금세 느끼지.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우리의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 사랑도 이상도, 고통도 다 그래. 우리는 계속 꿈꾸지.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지?"
p.417

 


 

 

사랑, 인생, 심리에 대하여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면서 복잡한가? 어느 누구도 타인을 알 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진실인가? 갈망하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최면에 빠지게 한 사랑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가?
p.334

 

'연애의 역사는 처음 일주일에 모두 써지고, 그 시기에 모든 징후가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떄문에 명백히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고 섹스의 흥분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p.196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아직 문이 닫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얼마나 흥미로운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혹시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심리는 또 무엇인가?
p.219

 

아무리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자신을 설득해도 사랑의 문이 쾅 닫히고 나면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크게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별에 대한 모든 책임이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상대에게 있기에 그런 끔찍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설득해봐도 주어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한다.
p.219

 

'작은 생각이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p.221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 길을 정한다. 우리는 상대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각자 자신의 길을 결정하게 된다.
p.251

 

사람들은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혼은 지옥 같은 타협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p.285

 

"어쩌면 이렇게 살다가 20년이 지나 60살이 되면 이루지 못한 꿈, 생에 대한 불만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겠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어느 정도는 실망하고 불만을 품고 살아가니까. 안 그래?" 
"다들 그런 이유로 아이를 가지려 하는지도 모르지. 다음 세대는 더 잘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p.331

 

 


진짜 뭐랄까... 더글라스 케네디야말로 진정한 문학가의 역할을 해내는 것 같다.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종종 느끼는 인생에 대한 회의, 결혼이나 연애와 같이 인간이 규정한 법칙들, 원초적인 본성에 기반한 사랑의 본질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또 다른 작품 <리빙 더 월드>이다.

두 작품 모두, 최고의 교육을 받고 상위 1%의 소득을 얻는 인물들의 내면 속 좌절을 잘 그려냈다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정상적인 인생, 정상적인 연애, 정상적인 결혼을 꿈꾸지만

그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면 안도해도 되는 것인지,

정상이 과연 정상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법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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