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내일 내뱉는 보통의 언어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참 괜찮은 문장들이 많다.
관계에 관한 문장들
우리가 서로를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성이란 것은 아주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달'처럼 존재할 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단면을 보여줄 줄 안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혀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단순히 그 사람이 싫다고 단정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반드시 정교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냥 당신에게 해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냥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거라고.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고등학교 시절 책상 위에 붙여뒀던 포스트 잇 중 하나에 이렇게 써놨었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상황이 나쁜 거라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려던 노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작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기 싫었기 때문에, 나도 남들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잘 되진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말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 모든 소문의 중심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연극성 인격장애'라고도 분류할 수 있는 이런 유형의 사람은 나와 상극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드는 감정에 대해 더 이상은 스스로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 사람이 싫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왜 이 사람을 싫어할까?' 생각하며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해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입버릇처럼 '걔는 이해가 안 가'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비좁은 경험치나 견해를 고백하는 걸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쉬운 건 다정한 사람들은 말수가 적다는 거다.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게 익숙한 사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풀어헤치기보다는 품어 버릇하는 사람들, 이는 다정한 이들이 가진 특성이다.
이 문장을 보고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항상 지긋이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절제된 농담과 리액션을 던진다. 분명히 E형보다는 I형인 것이 확실한데, 그러면서도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여러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 참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늘고 길게 오래가고 싶습니다' 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뭐 저렇게 소박하고 색깔 없는 다짐을 한담'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모두에게 호감가는 최고의 장점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문장들
소중한 것은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힘을 들여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종종 말로만 그것을 소중하다 칭한 채 방치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새삼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 만큼은 안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 낯간지럽지만 나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소소하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대놓고 하면 질색팔색하며 오글거려할테니깐. 몰래.
누가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혐오의 순간을 겪는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염치'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예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땐 그런 사람이 지루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확연히 다른 세상이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염치가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멋있어보였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검열을 할 줄 아는 사람. 화를 낼 때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정제된 표현으로 차분히 드러내는 것. '뭔 상관이야, 내 인생 내 맘대로 살겠다는데' 하며 막무가내로 살면, 본인은 편하다. 그리고 되게 쿨해진 기분이 든다. 다만, 되게 품위없어보인다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에 속도가 조금 늦어지고 일분, 일초를 읽는 감각이 둔해짐으로써 세상을 좀 더 큰 그림으로 읽을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도 어쩌면 신체의 노화 덕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뼛 속 깊이 느꼈던 특정한 상황들이 있다. 대단한 걸 성취했을 때도 아니고, 남들에게 인정받았을 때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금방 잠잠해지고, 오히려 그것을 잃을까 불안에 떨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그런 것들 속에 나를 푹 담궜을 때였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게 많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다루느냐에 따라 내일의 질이 달라질 뿐이다.
이해가 안돼서 실천 못했던 '내가 가진 것에 대해 하루 3가지씩 감사하라' 라는 말이 생각난다. 처음 몇일은 노력한다.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집과 밥이 있어서, 건강해서..." 뭐 그런 것들. 근데 진짜 진심으로 감사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없는 삶을 솔직히 살아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근데 지난 여름 자전거 사고로 이 하나를 잃고나니까 새삼 모든 것들이 감사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꼭 뭐 하나를 잃어봐야 소중한 걸 아는건가...) 눈을, 팔을, 다리를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아찔함이 피어올랐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회한에 가득차 있을 것인지, 내게 지금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보살피는 것에 집중할 것인지는 온전히 본인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동시에, 그 안정이 오면 회의감을 느낀다.
내가 기특한 순간이 많아지면 그게 자존감이 되는 것 같아.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은 굉장히 작은 것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존엄한 사람들은 일상 속 하차낳은 순간들이 정갈한 이들이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 생각해서 스스로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깨알같은 장면들이 누구에게나 있으르 것이다. 그러니 고요히 자신을 토닥여주는 습관을 가져보자.
정말 보통의 언어들인데 가슴에 콕콕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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