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게 무슨 기분일지 궁금해하고는 했다.
연애를 하기도 전부터 '이별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상상에 나래에 빠지던 나였으니까.
근데 막상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던,
머리도 감지 않고 침대에 널부러져 있던 어느 햇살 좋은 주말 아침,
정리되지 않은 카톡 목록 속에서
신부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야 말았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헤어진지 이제 3년 남짓 되었나,
기억 저편에 묻혀서 다시 꺼내볼 일 없을 사람일 줄 알았는데
덕분에 그 다음 한 주를 몹시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보내버렸다.
평소에 딱히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도,
그 사람을 좋아하던 감정이 남아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 감정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변태같나)
첫째.
사귈 때만큼은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과거의 나는 그와 결혼을 꿈꾸기도 했을 터이다.'언젠간 그와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겠다'고 마음 속 저 깊숙이에서 가능성이라도 담아두고 있었는데,갑자기 그 잠재적 미래가 전면 차단되어 버린 것이니,왠지 좀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둘째.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이제는 심각한 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그와 함께 했던 시간에는 분명그뿐만 아니라 나의 찬란했던 모습도 함께 녹아들어 있는데,그 시간을 회고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버린 기분이다.
셋째.결혼이라고 하면 뭔가,인생의 한 스텝을 전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그리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것 같은.실제로는 딱히 위의 문장들이 사실이 아니고,그렇다는 생각을 안하려고도 하지만 말이다.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사진이 너무나도 예뻐보여서 말이다.주말 아침 침대에서의 내 모습이 괜히 더 추레해보이는 효과...
넷째.
사귀면서도 종종 결혼 얘기를 꺼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그리고 결국 목표를 달성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내가 대체 가능한 사람이었구나'싶은 생각이 든다.맞다, 그거다.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기 싫었는데,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에게 나는대체 가능한 사람이었나보다.
다섯째.
그냥 기분이 더럽다. (그냥 이거지 뭐)
그래도 좋게 헤어졌던 사람이라서,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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