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하염없이 한탄하는 사람.
그리고 생판 모르는 남을 밑도 끝도 없이 부러워하는 사람.
그들에게 애정이 있고, 그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런 말들을 계속해서 듣고 있기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중학교 때 겪었던 중2병에 대해 풀어놓으려 한다.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에 푹 빠져서
그 '우수에 찬 눈빛'을 쏘고 다녔다.
한 번은 초등학생이었던 친구 동생이 나보고 '누나는 너무 슬퍼보여'라고 하는데
마치 그게 칭찬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나의 중2병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우수에 찬 눈빛을 쏘고 다니는 것을 넘어,
세상 온갖 철학적 고민과 존재론적 회의에 휩싸여서
지금 생각해보면 별 답도 없는 심연의 생각을 꺼내 털어놓고 다녔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여자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자기가 할 말을 시원시원하게 잘 하고 다니는 친구였다.
그 때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자꾸 우울한 얘기만 하는 거 듣기 싫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섭섭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 친구는 나의 행동을 지적한 거였지만,
나는 내 존재가 거절당한 기분을 느꼈다
당시 나는 '친구는 그런 것도 다 나누고 들어줄 수 있는 상대 아닌가'하는
상당히 왜곡된 친구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참 고민하는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친구가 내 앞에 있다.
그 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힘들었겠구나", "그렇지" 하며
맞장구를 쳐주는 일.
그러다가 한 번 폭발한 일이 있다.
"자꾸 그렇게 푸념만 하는 것보다는
그냥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 중에
제일 쉬운거 하나 먼저 시작해보는 건 어때?"
그 애는 "해야지..." 하며 말 끝을 흐렸다.
온갖 가능성만 실컷 제시하고 정작 실행은 안하면서,
그 한탄을 푹푹 한숨 쉬며 늘어놓고 있다가,
거기까지는 뭐 개인적인 문제니까 괜찮다고 쳐도.
갑자기 "너는 요즘 뭐하냐?"하면서
그 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나의 삶을 감히 재단하려 들고, (사실 이게 제일 싫었다)
지도하려 드는 그 친구의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불편한 마음이,
또 다른 한 구석에는 안타까움이 들어찼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스킬 중 하나라고들 하는데,
감사하는 마음과 안주하는 마음을 혼동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자기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불만에만 집중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겠나.
나라고 불평을 안하는 건 아니다.
사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친한 친구들에게 여과 없이 털어놓기도 하고,
불편하거나 화나는 감정을 못 숨기기도 하고,
참 부족한 점이 많은 나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과 나의 처지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서로 기운빠지는 일이라는 걸 배웠기에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나 뭔가를 시작하기로 했어"라는 말을
헤프게 하지 않으려고 항상 경계하고 있다.
자신이 하기로 한 걸 진짜로 해낸 사람은 "잘했어"라는 반응을 얻지만,
하기로 해놓고 시작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좋은 시선을 얻지 못한다.
그건 나와의 약속을 내가 스스로 깨는 행동이기도 해서,
본인의 자존감에도 그닥 좋은 영향이 아닐테다.
그냥 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친구가 못찾은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주변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불행해, 나는 못났어, 나는 부족해
그렇게 계속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점점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디멘터인가)
그런 친구를 곁에서 지지해줄 수는 있지만,
날을 세운 자존감을 내 앞에 들이대며
나까지 공격하는 행동은 도저히 참아주기 힘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냥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주변 친구까지 공격하는 친구에 대한 불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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