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주 주말, 친한 동기 언니랑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1박 2일 일정이었고 심지어 토요일 아침에는 부동산 계약까지 있어서 버스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이 술술 풀려서 안전하게 11시 버스를 잡아 타고 삼척으로 향했다. 나의 일정을 이해해주고 여행을 함께 계획할 수 있는 동기 언니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강원도로 가는 버스는 역시 많이 막혔다. 무려 3시간 40분이 걸려서야 도착한 삼척.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머무는 동안은 차를 빌려 돌아다니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쏘카를 하나 빌려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삼척해변에서 바다도 보다가 금방 해질녘이 되어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처음으로 들른 해물탕 집이 예약이 꽉 차 있다길래 입뺀(?) 당하고 당황해서 ㅋㅋㅋㅋㅋ 다른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근데 거기도 무슨 예향제랬나.. 지역 여고 동창회같은게 있다고 예약이 꽉 찬 거다. 또 다시 쫓겨날까봐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다행히 안쪽에 자리가 있어서 무사히 저녁을 먹고 나올 수 있었다. 식당 주인분과 사위분이 아주 친절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이 동네 사람들 엄청 마음이 여유롭고 친절했다! 이런게 바로 지방 여행의 묘미지. 여행왔을 때 예기치 못한 친절을 겪고 나면 행복감이 두 세배로 커지는 것 같다.
언니랑 돌아다니면서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온통 웃음바다였다. 서로 회사 이야기부터 연애사(빠질 수 없지), 온갖 자잘한 이슈들에 대한 큰 생각들. 이런저런 이야기들 속에서 온전히 서로의 생각에 집중하고 공감해주는 관계가 새삼 참 소중하다고 느꼈다. 공감대도 많았고 칭찬도 많았고, 미쳐 돌아가는 드립도 많았고ㅋㅋㅋ 기분좋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진짜 내 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지 오래된 사이임에도 서로 시간과 체력을 내어 추억을 쌓아가려는 노력이 그 관계를 유지시키고 더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저녁 8시에 칼같이 차를 반납하고 언니 집으로 향했다. 가정집이라서 너무 편안했고, 따뜻했다. 오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사온 귤과 핫초코와 사또밥을 까놓고 한참을 프로젝터와 씨름하다가, 볼륨 켜는 방법이 ‘소리 높여’ 라는 보이스 명령어라는 걸 깨닫고 또 푸하하 웃어댔다. 어떤 버튼을 눌러도 안 먹히던 것이. 선택한 영화는 <탑 건>. 유명한 영화지만 둘 다 안 본 것도 운명적이었따. 영화를 보는데 너무 화려하고 스릴있고, 아주 미국을 쳐발쳐발(?)해놓은 영화라서 우리끼리 또 엄청 드립치면서 봤다 ㅋㅋㅋㅋ 그런 클리셰같은 장면들 있잖나. 석양이 지는 뜨거운 바닷가에서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군인들이 공놀이를 하며 허허허 하는 장면이라던지.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영화 선택이었다! ‘아 배 터질거 같애’를 몇 번을 말하면서도 계속 젤리랑 과자를 주워먹었다.
그래도 소중한 주말이었기에 우리는 절대 수면시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9시간을 내리 숙면을 취한 후 깔끔하게 또 4시간 차를 빌려서 돌아다녔다. 점심으로 언니가 먹고싶어 하던 옹심이를 먹었는데 벽화를 보고 또 웃음이 빵 터졌따. 그러고는 또 어딜가지 찾아보다 (아, 이번 여행에 우리에게 계획이라고는 1도 없었다) BTS가 다녀갔다는 맹방 해수욕장에서 바다 구경을 하며 꽈배기도 먹었다. “저기 예쁠 거 같은데 올라가볼까?!”, “여기 대강 차 세우고 바닷가 구경 먼저 하다가 갈까?” 와 같은 즉흥적 제안과 빠릿빠릿한 선택이 이어졌는데, 이런 여행이 나는 정말 좋다. 카페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다가 시간 맞춰서 버스터미널에 돌아왔다. 반납시간을 30초 남기고 차를 반납하는 데 성공해버렸다 ㅋㅋㅋ P들은 어쩌면 이런 아슬아슬한 계획되지 않은 스릴을 즐기는 것일수도.
순간순간 계획도 세워야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동네였지만 결이 착착 들어맞는 여행이었다. 어렵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즐겁고 웃음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려던 내가 새삼 기특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아, 나 원래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자. 나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오히려 좋아,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되자. 마음이 많이 밝아져서는 집에 돌아왔다. 물론 돌아오는 데에도 역시 4시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그 뒤에 이어진 기차 시간을 변경하기에 이르렀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많이 웃었던 덕분이겠지.
언니가 함께 있으면서 참 이런 저런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여자들이 원래 서로 칭찬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서로 안지 5년이 다 돼가는 판에 서로에게 거짓말로 칭찬을 던질 사이는 지났다. 뭐, 어쨌든 서로의 외모부터 시작했어 성격도 좋고, 얘가 참 밝네, 긍정적이네 하는 칭찬을 듣다보니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언니한테 말로 인정받으니까 더 만족스러웠달까. “난 너 참 좋다”. 그 말은 남자친구들에게 들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동질감과 친근함, 그리고 어떤 안도감을 선물해주었다. 고마운 여행이었다.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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