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이란 ?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상습적인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한 종류이다. 미국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 1955>에서 유래된 말이다.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만든 영화 <리플리>를 소개한다. 멧 데이먼 배우가 주연을 맡은 1999년 작품인데, 오래된 작품이지만서도 매우 명작이다. 영화 한 편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ㅎㅎ
<리플리>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
여러가지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주인공 톰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지만, 영화의 흐름을 결정한 가장 큼직한 거짓말 총 6개를 따라 줄거리를 알아보자.
첫 번째 거짓말, 나는 프린스턴 졸업생입니다.
시작은 사소한 거짓말이었다. 한 상류층의 파티에서 피아니스트 대역을 맡아 연주하던 톰(맷 데이먼)은, 선박 부호 그린리프씨의 눈에 띄게 된다. 그 부호는 프린스턴 대학 자켓을 입고있는 그를 프린스턴 졸업생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로마에 가서 자신의 아들, 디키 그린리프(주드로)를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비극은 시작된다.
두 번째 거짓말, 나는 디키 그린리프입니다.
로마에 도착한 그는 우연히 메러디스라는 여성과 마주친다. 한 순간, 그는 자신을 디키라고 소개해버린다. (왜 그랬을까...) 매러디스 역시 엄청난 상류층 자제였고, 그녀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디키와 그의 여자친구 마지를 찾아내고, 그들의 집에 얹혀 살게된다. 처음에는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만, 그의 호화로운 삶에 현혹된 그는 디키의 서명과 모습을 흉내내고 그의 옷을 몰래 입어보기 시작한다. 디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재즈도 빠삭하게 익히나, 디키의 또 다른 친구 프레디가 그를 은근히 '촌스럽다'며 무시하는 발언에 기분이 상한다. 프레디의 등장 시점부터, 디키와 톰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디키가 바람피던 이탈리아 여성이 물에 빠져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톰은 디키 대신 이 일을 덮어쓰겠다며 그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톰에게 질려버린 디키는 산레모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그와 헤어지려는 준비를 한다. 하지만, 거기서 집을 구해 눌러살고 싶다는 톰을 '거머리'같다며 지겨워하고, 같이 타고 있던 보트에서 말다툼이 격정으로 치닫으며 디키를 때려 죽이게 된다.
세 번째 거짓말, 디키는 로마에 혼자 있고 싶대.
잠시 충격을 받지만 이내 새로운 거짓말을 생각해내는 톰. 톰은 마지에게 돌아가, 그가 로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톰은 로마롤 떠나, 톰과 디키의 이름으로 호텔을 각각 잡아 알리바이를 만든다. 그리고 디키의 역할까지 1인 2역을 하기 시작한다.
네 번째 거짓말, 나는 프레디를 죽이지 않았어.
처음부터 그를 의심했던 디키의 친구 프레디는 톰을 찾아온다. 그리고 진실을 알아차리지만 즉시 톰에게 살해당한다. 그의 시체를 유기하지만 얼마 못가 경찰에게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다섯번째 거짓말, 디키는 자살했어
점점 수사망이 좁혀들어오자, 그는 디키가 쓴 것처럼 편지를 쓴다. 그가 이탈리아의 여자와 프레디를 죽이고, 그 사실을 못견딘 채 자살을 선택했다는 뉘앙스로 쓰고, 결국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마지는 그를 끝까지 의심하지만, 오히려 디키의 아버지는 그를 믿고, 디키 유산의 일부를 톰 앞으로 주겠다는 결정까지 내려버린다.
여섯번째 거짓말, 맞아 나는 디키야
모든 게 잘 풀린 것 같은 그 때, 그는 마지의 친구이자 그의 변호를 도와준 친구 피터와 유람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와 얼핏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꽃길만 남은 것 같았던 그 때, 배에서 매러디스를 만난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피터로 알고 있다. 소름 돋는 것은, 그 순간 매러디스에게 '혼자 왔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그녀가 많은 일행과 함께인 걸 알자, 그의 눈길은 피터로 향한다. 그를 디키가 아닌 톰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피터를 제거하고 허망하게 앉은 그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거짓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이 풍선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가 한 거짓말은 여섯 개가 아니라 수십 개지만, 큰 맥락을 잡기 위해 이렇게 요약해보았다.)
<리플리>와 비슷한 영화들
거짓말과 그 결과에 대해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11월 중에 개봉 예정인 <디어 에반 핸슨>, 그리고 <화이트 타이거> 등이 있다. <디어 에반 핸슨>은 예전에 책으로 읽었는데, 오늘의 영화 <리플리>를 보고나니 이 작품이 문득 떠올랐다.
크게 다른 점은, 에번 핸슨이 거짓말을 고의로 했던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어떻게 만회해야 되는지 고민하느라 괴로워했다는 점에 반해, <리플리>에서는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순식간에 생각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본인의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점. 그런 부분에서는 <화이트 타이거>와 좀 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난 후기
톰은 자신의 현실에 불만이 많은 청년이었다. 웨이터 일도 하고, 피아노 줄도 맞추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을 살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맛본 상류층의 인생에 푹 빠져버린다. 마치 그가 상류층이 된듯한 착각에 빠져버리고, 디키의 말마따나 '거머리'처럼 그의 곁을 맴돌며 그의 모든 것을 흡수하려 한다.
그의 진짜 모습을 좋아해주었던 마지, 피터 같은 사람들 곁에서 편안함을 느꼈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본인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 무덤을 팠고,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게 깊게도 파버렸다.
살다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동경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사실은 절대 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그 가능성만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주변에 한 지인이 있다. 겉으로 그녀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지만, 춤에 관한 열등감이 있다. 최근 유행 중인 <스우파>를 정말 싫어하며 보지 않을 정도이다. 학생 때까지 허니제이 같은 리더들에게 춤 강습까지 받아가며 춤을 열심히 췄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그들을 보며 어떠한 질투심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을 갉아먹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 하는지에 따라 마음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평온을 찾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톰 리플리는 자신이 뭘 고른지도 모르고 기꺼이 지옥을 택했다.
영화는 리플리 증후군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결코 될 수 없다는 메세지 또한 날리고 있다. 그 과정은 분명히 괴로울 뿐더러, 사람들과 어떠한 정상적인 관계도 맺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혐오했던 나머지, 그 모습을 마음 속 깊숙히 쳐박아두고 열쇠로 단단히 잠가버렸던 그.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진정한 (디키의 말마따나) 거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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