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은 자기 주장이 조금 강하게 들어가버렸다. 책에서 그만큼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생각이 많았다.
책은 총 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부 :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2부 :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3부 :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
"나는 차별을 하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의도는 차별하려던 게 아니지만, 은연 중에 여러 종류의 차별을 하는 중인 우리에게 보내는 메세지이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 p.209
능력은 한 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특정한 평가기준으로 단정지어 판단해버리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p.113
회사 생활에서 제일 억울한 것 중 하나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모호한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관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최소한 공부라도 잘하면 최고라고 치켜세우기라고 해줬지, 회사는 그런 평가기준마저도 애매하다. 알려주지도 않고. 최근 면접 후 탈락 사유를 피드백해주는 회사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 회사의 이미지가 결정되는 건데, 아쉬움을 주는 회사들이 여전히 많다.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p.139
2016년 경 '시선 폭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특정 대상을 슥 훑어봄으로써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줄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은 미국 사진작가 헤일리 모리스 카피에르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거식증에 걸렸다가 갑상샘 기능 저하로 비만이 되었는데, 길거리에서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진에 담아 화제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말이나 행동으로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즐겁게 지냈지만, 내게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던 공간은 중학교였다. 권력의 계급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공간이었고, 언어폭력과 시선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눈으로 쓱 훑는 행동에 담긴 복잡한 혐오와 위협감을 그 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남이 바라지 않을지도 모를 관심을 들이대며 괜한 평가를 내리는 행동에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차별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돌아보고자 했다." p.210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뜨끔할만한 부분들을 지적한다. 특히 성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일례로, '집회와 시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각은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촛불시위를 하는 것은 가슴이 웅장해지고 뿌듯한 일이지만,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탔다 내렸다 하며 시위를 하는 것은 출근 시간을 지연시키는 성가시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삶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위의 유동성에 따라 개인의 만족감이 달라진다. 불평등이 있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은 안심한다. 하지만 그 편안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생에 걸쳐 쏟는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결국 일정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이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p.187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많이 목격했던 불평등은 성별보다는 학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방관자이자 우월감을 느끼는 쪽의 입장이었다. 고백하자면, 이기적이지만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싶어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10대 시절의 내 노력을 최대한 보상받고 싶다는 욕망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한다는 당위성보다 더 강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종종 나오는 말은 "우리는 기득권층이야"였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던 같은 대학 출신 남자친구는 "난 신분 상승에 성공했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는 소위 '선민의식'이 자주 겉으로 드러나고는 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사회를 탓하고 싶다. 이걸 어떻게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의심할 여지 없이 불공평한 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우리에게 노력하라고 채찍질해왔지만, 지금은 우리가 노력으로 손에 쥔 것마저 앗아가려고 하는 기분이다. 무엇이 답인지 모르겠다. 어떤 가치에 충성해야 하는 건지도 더 이상 알 수 없다. 더 씁쓸한 것은, 본인이 기득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딱히 행복해보이거나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더, 더, 더 가지려는 욕심과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아니 애초에 위와 아래를 규정지어 버린 사회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p.190
오늘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희망찬 맛이라기보다는 씁쓸한 맛이다. 내 생활반경 밖에 있어 관심을 두기조차 버거운 사회의 단면들을 파헤치는 동시에, 내가 몸소 실천해왔던 차별들을 거침없이 드러내주는 책이다. 차별을 하고, 차별을 받고, 이렇게 서로 피곤하게 사는 우리네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조금씩 느슨해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 책을 통해 한뼘 더 느슨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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